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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한 가족이야기

[5화] 게이 커플 "나랑 같이 살아줄래?"

 

l 비범한 가족이야기2012년 3월~10월까지 8개월 동안 발행되는 월간 칼럼으로, 우리 사회에서 조금은 다른 가족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의 기고 또는 인터뷰를 통해 꾸며집니다. 월마다 특별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4~5편의 가족이야기가 펼쳐집니다. 

l 4월의 키워드 ‘공동생활’ 비범한 가족들의 '함께 살기'는 원가족들을 위한 하얀거짓말, 함께 살면서 쌓이게 되는 신뢰, 그리고 가끔은 '같이 사는 게 쉬운 것은 아니구나'라는 푸닥거리가 있지요. 비범한 가족들의 공동생활은 우리 사회 모든 동거가족들이 한번쯤은 고민해봐야할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4월의 첫 번째 이야기  [5화] 게이커플 "나랑 같이 살아줄래?"

성소수자에게 '자기만의 방'이란, '우리들의 방'이란 

가족구성권연구모임  가람

 

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것은 여성뿐만이 아닐 것이다. 동성애자, 이주민, 장애인 등 한 사회의 소수자로 표상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는 공간, 그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이건 사실 모든 사람에게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지만, 소수자로 표상되는 자들의 방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의 대상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일 테다. 우연찮게 아들이 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20대 중반인 그의 방을 매일같이 뒤진다는 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만의 방은 꼭 물리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 역시 알게 된다.


 

나에게도 그랬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살림들. 그 속에서 혼자서 방탕해 보고도 싶었고, 뒹굴다 지쳐 잠들어 보고도 싶었다. 밤새도록 음악도 틀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드라마를 보며 펑펑 울기도 하고 야동도 보고 남자도 들이면서 노닐고 싶었다. 누나가 결혼하면서 누나와 함께 오래 살던 별 잘 들던 집을 떠나 '저 어디 컴컴한 곳'에 있는 하늘이 내다보이지 않는 원룸으로 방을 옮기기로 한 때, 나는 나의 방탕하고 음란할 빈 방을 보며 커다란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오, 나만의 방이라니.


 

같이 살 줄은 몰랐다

 

방을 계약하고 나서 얼마 후, 나는 그를 만났다. 그분은 내가 단원으로 있는 게이코러스 지_보이스의 신입단원이었다. 화사하고 준수한 청년이었다. 신입단원에게 접근하면 혹시라도 조직에 해를 끼칠까봐 나는 정기공연 일정을 마치게 되면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를 세 번째로 본 2010년의 제헌절, 법학을 공부하던 나는 제헌절의 의미를 새기며 경건하게 술을 퍼먹고 있었고, 그날따라 늦게 이어진 지_보이스의 뒤풀이 끝에 그는 집으로 가는 막차를 놓쳤고, (중간 생략) 다음날 아침 우리는 그의 고향인 강릉 가는 고속버스에 올라타 학교도 회사도 잊고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연애는 이렇게 평범하게 시작된다.


그런데 그로부터 보름 후 이사하는 날, 그는 내 이사를 도와주고 나서 그날부터 집에 들어가지 않고 내 방에 머물게 된다. 한 한 달쯤 지났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자갸, 근데 왜 집에 안 들어가? 자갸 짐도 다 집에 있잖아."

 

그의 대답.


"나 짐 없어."


문득 미안해진 나는 그를 이끌고 슬리퍼를 끌며 방 근처의 가장 좋은 식당에 데려가 초밥을 시켜놓은 후, "나랑 같이 살아줄래?" 라며 프로포즈를 하게 된다. 그렇게 '조손가정'의 '손'을 담당하고 있던 그는 '남남(男男)동거가정'의 '남'을 담당하게 된다. 동거는 이렇게 평범하게 시작된다.


자기만의 방을 노래 부르던 내가, 이렇게 남자와 같이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사귄 지 보름밖에 안 된 남자와.

 

우리들의 방

 

같이 사는 데 딱히 불편함은 없었다. 이상하게 잘 맞았다. 잠버릇도 비슷했고, 식성도 비슷했다(남자 식성은 좀 다르다. 그는 송중기파, 나는 윤계상파). 그리고 내숭을 떨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자기만의 방에 들어앉은 사람처럼 남들 안 보는 데서만 하던 짓도 그냥 했다. 티브이를 보다 울어도 괜찮았고, 틈만 나면 하는 버릇대로 귀이개로 귀를 후벼도 괜찮았다. 그런 내가 신기하기도 했더랬다.


 

집안일도 딱히 나누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레 적당히 나뉘었다. 청소나 빨래는 시간 되는 사람이, 요리는 내가, 설거지는 그가, 화장실 청소는 내가, 살림살이를 장만하거나 장을 보는 것은 같이. 뭐 이런 갈등 없는 부부가 다 있나 싶게, 그냥 그렇게 잘 맞았다.


우리는 살림을 합친 것으로 생각했다. 동거와 살림을 합치는 것은 좀 다르다. 누군가의 공간에 한 사람이 초대되어 들어가는 것이라기보다는 함께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집은 누가 하고, 가구는 누가 하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같이 사고, 같이 아끼며, 같이 쓰면서 살아가는 것. 그런 느낌이 좋았다. 서로의 통장을 함께 보관하고, 살림 계획이며 저축 계획을 같이 짜고, 같이 돈을 모아 여행 가고, 팔짱 끼고 산책도 나가고, 가장이나 마찬가지인 그가 본가에 돈을 부칠 때에도 함께 상의하고, 명절에 고향집에 보낼 선물들을 함께 고르며 그렇게 사는 느낌. 얼마 전 그 방을 떠나 내가 다니는 직장 근처에 새로 방을 함께 구하면서는 이제는 명실 공히 함께 만드는 집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 좋았던 것 같다. 우리들만의 방. 눈 뜨면 기분 좋은 이 안락한 공간.


반응들

 

살림을 합쳤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주위 사람들의 반응들은 다양했다. 한 레즈비언 언니는 "야, 보름만에 살림 합치는 게 무슨 게이니, 레즈 해!"라고 하기도 하고(레즈비언 커플들은 게이 커플보다 같이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경험 많은 게이 언니는 "가람아, 그냥 같이 좀 살다가 생각해 봐. 살림 합치는 것은 다른 문제야"라면서 걱정해 주기도 하고, 이성애자 남성인 선배는 "니네 너무 쉽게 동거하는 거 아니니?" 하면서 동성애자의 빠른 진도를 우려하기도 했다. 음. 생각해 보니 처음부터 지지해 주었던 분들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럭저럭 그렇게 같이 산 지 만 2년을 향해 가는 지금, 그냥 쟤네들은 좀 잘 맞는 부부인 것처럼 보이는 듯하다.

 

한편, 그와 같이 사는 모습을 보신 우리 어머니의 반응. 우리 사이를 진작부터 알고 있던 누나의 전언에 따르면, 아들이 게이인 것을 모르시는 어머니께서는 "1. 가람 쟤는 승질상 누구와 같이 살려고 하는 애가 아니다. 2. 게다가 같은 이불을 덮기까지 한다. 3. 고로 가람은 게이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하시다 "아우, 내가 별 생각을 다 한다"라고 하셨다고 한다. 음….

 

자기 자신의 방


이 글을 쓰면서 게이'도' 같이 잘 산다거나 게이라서 '더' 같이 잘 산다거나 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까 했지만, 암만 생각해도 특별히 그런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런 거 상관없이, 그냥, 잘 산다. 이제까지 함께 잘 살아 왔듯,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


아무래도 혼인과 같은 제도적인 가족 구성을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수이 살림을 합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주위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살 수 있다거나 세상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준다거나 우리를 가만히 놔둔다거나 하지도 않은 듯하다. 이런 것들을 넘어서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맞는 대로, 흐르는 대로 편하게 가족을 꾸리거나 꾸리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지닌 조건이나 환경, 그리고 사회의 견고한 가족의 구조는 그렇게 되도록 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을 곰곰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한편으론 자기만의 방을 갖고 싶었던 내가, 그와 함께 나에게 맞는 '자기 자신의 방'을 찾았다는 생각도 든다. 나도, 그도 말이다. 앞으로도 사람들과 함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맞는 대로, 흐르는 대로 편하게 자기 자신의 방을 찾아갈 수 있는 세상을 향해 힘을 보탤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 이것이 바로 '비범한 가족 이야기'가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