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비범한 가족이야기는 2012년 3월~10월까지 8개월 동안 발행되는 월간 칼럼으로, 우리 사회에서 조금은 다른 가족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의 기고 또는 인터뷰를 통해 꾸며집니다. 월마다 특별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4~5편의 가족이야기가 펼쳐집니다.
l 5월의 키워드 ‘돌봄’ 함께 사는 순간, 서로를 마음에 담는 순간 돌봄의 마음과 역할이 생겨난다. '미워도' 해야만할 돌봄도 있고, 사랑만으로 실행되지 않는 돌봄도 있다. 돌봄의 관계는 원망, 짜증, 피로가 따라오기도 하지만, 어울려살 수 있도록 해주는 염치,이해, 의지, 행복을 배울 수 있게 해준다. '돌봄'은 엄마 혹은 여성들만 해야하는 역할이 아니라, '가족'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함께 살고 적응하고, 다시 살아가고: 리카에게
서둘러 모래와 화장실, 사료를 주문했다. 기대는 했지만 내가 고양이와 함께 살 줄은 몰랐다. 길고양이를 임보하고 있다는 연락을 전해들었고, 고민했다. 두려웠고 두근거렸다. 망설이다가 너무 늦지 않게 연락을 했다. 서둘러 필요한 물품을 구매했다. 그렇게 묘연(猫緣)을 준비했다.
물품을 준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내가 문제였다.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었다. 꽤 오랜 바람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엔 준비가 없었다. 고양이가 주인공인 만화책, 고양이와 함께 사는 법을 설명한 책 한 권 읽은 적 없을 정도로 내겐 막연함 뿐이었다. 그저 물품을 사고, 누군가 죽을 때까지 함께 하는 정도의 각오만 있다면 충분한 줄 알았다. 그렇게 덜컥, 말 그대로 덜컥, 고양이가 내게 왔다.
내게 온 첫날 리카는 곧장 집을 탐사 했다. 낯선 곳이라 구석에 숨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집 전체를 돌아다니더니 나의 무릎 위로 올라왔다. 잠시 앉아 있다가 내 팔을 앙, 물곤 내려갔다. 리카는 우아했고 또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밤엔 달랐다. 밤마다 우다다 달렸고 난 잠을 잘 수 없었다. 한창 바쁘던 그때 나는 밤을 거의 뜬 눈으로 보내곤 했다. 잠이 들만 하면 리카는 달리거나 울었다. 밤에 자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깨지 않으려고 했지만 혹시나 아파서 우는 것일까봐,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 그리고 아침이면 푸석한 얼굴로 집을 나섰다. 헤벌쭉 웃는 얼굴이기도 했다. 좋았다. 내 표정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헤벌쭉 웃으며 다녔지만 함께 사는 것이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혼자 산 나는 옷을 어떻게 갈아 입어야 할지, 샤워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한동안 리카가 날 볼 수 없는 곳에서 옷을 갈아 입었고 샤워 후 옷을 다 챙겨 입고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내게 고양이는 함께 사는 어떤 존재였다. 그랬기에 리카와의 동거가 사람과 동거하는 것처럼 낯설었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리카는 임신한 고양이였다. 고양이와 생전 처음 사는데 벌써 출산 경험이라니... 길고양이라 몸이 부은 것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그럴리 없었다. 배가 너무 빵빵해서 내게 오고 1~2주면 출산할 것만 같았다. 몇 주를 오늘내일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서야 출산했다. 리카는 내 무릎 위에서 출산하려고 했다. 출산을 앞두고 내가 마련해준 자리가 아니라 내 무릎 위에서 힘을 주었다. 난 서둘러 리카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출산이 끝난 후 다시 나의 무릎 위로 올라와 골골거리며 한동안 온기를 나눴다. 그렇게 여덟 아기 고양이가 태어났다.
출산 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리카와 나의 관계는 나빠지고 있었다. 나의 잘못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해 일 년 중 그 시기가 가장 바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밤 늦게 돌아왔다. 여덟 꼬물이를 돌보는 리카의 어려움, 스트레스를 공유할 시간이 부족했다. 시간은 핑계다. 리카가 아이를 돌본다면 나는 리카와 정서적 교류를 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늦게 귀가했기에 한 시간이라도 리카와 함께 하려고 했지만, 고백하건데 그땐 여덟 아깽이가 더 귀여웠다. 리카가 아기들에게 젖을 주는 동안 밥과 물을 마실 수 있게 작은 접시에 밥과 물을 담아 직접 먹이기도 했지만 이 정도론 부족했다. 리카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변했고.. 아니 내가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어떤 존재와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지 못 한 나는 이 긴장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 출산한 존재와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고 또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 해야 하는지 몰랐다. 내가 마음을 혹은 몸을 열어야 함을 몰랐다. 그 누군가의 습관에 일방이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조금씩 조절해야 했는데 그걸 몰랐다. 난 신경질을 감추지 못 한 상태로 리카에게 최선을 다하는 척했다. 그것을 눈치 못 챌 리카가 아니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르게 우리의 관계는 안정기에 들어섰다. 분양이 끝난 다음의 일이었다. 아기고양이에게 정을 붙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이름을 붙이지 않았지만 아이를 분양하며 가끔은 울었다. 한 번은 꺼이꺼이 울기도 했다. 그렇게 이별하며 리카와 나, 그리고 리카의 딸 바람만 남았다. 그제서야 내게 여유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혹은 무언가를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리카의 눈을 보며 “우리 많이도 말고 일단 20년만 같이 살자”고 말하곤 했다. 집고양이 평균 수명이 15년이라고 하니 20년이면 과한 욕심도 아니잖은가. 다른 많은 집사들이 그렇게 믿듯, 별 다른 일 없이 오래오래 함께 살기를 바랐다. 우리 셋, 오래오래 함께 살기로 약속한 우리 셋.
리카는 애교가 많고 또 내 손을 많이 요구했다. 내가 집에 있을 때면 수시로 놀자고 울었고, 내 무릎 위에 올라와 있길 바랐다. 내가 집을 나서면 문 앞까지 나와 가지 말라는 표정을 지었다. 집에 들어갈 때면 자다 깬 얼굴로 달려나와 나를 맞이했다. 외출할 때면 나가지 말라는 표정이었지만 쓰레기를 버리러 1분 가량 나갈 때면 야옹야옹, 울곤 했다. 어디가냐며 울었다. 너무 서럽게 울어 미안할 정도였고, 또 기쁘기도 했다. 잘해주는 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 날 찾는 것일까? 리카가 바라는 만큼 함께 놀지도 않고 리카가 바라는 음식을 양껏 주는 것도 아닌데... 리카는 언제부터 나를 자신의 동거인으로, 동반종으로 받아들인 것일까? 내게 리카는 그냥 어느 순간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리카를 내 일부로 받아들여야겠다고 다짐해서가 아니었다. 함께 살면서 그냥 어느 순간 그렇게 되었다. 공간을 공유하고 생활을 함께 하며, 그 역사가 켜켜이 쌓이면서 우리는 서로의 일부가 되었다.
역사를 공유했지만 난 리카가 하는 말, 고양이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싶진 않았다. 처음엔 궁금했다.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 수가 없어 사람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길 바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내가 리카에게 충분히 잘 해 주는 것이 아니기에 무섭기도 했다. 내가 충분히 잘 해줄 수 없기에 리카가 어떤 얘기를 할지, 어떤 불만을 토로할지 걱정이기도 했다. 그냥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것이 편했다. 적어도 나는 안도할 수 있었다.
두렵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 간의 대화가 아닌 다른 방식의 언어가 더 좋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면 상대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식의 대화가 좋았다.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리카와 살면서 깨달았다.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소통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관계. 이것은 역사를 쌓아가며 각자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깨달았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몰랐다. 이 과정에서, 인간 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은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나의 말을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빚은 비극은 아닐까를 고민했다. 소통할 수 있다는 기대가 관계를 파국으로 이끄는 것은 아닐는지. 대화할 수 없는 상황은 관계를 더 편하게 만들고 (역설적으로)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함께 살며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고, ‘나중에 더 잘 해 줄게’라고 적당히 미래를 약속하며(혹은 현재를 유예하며) 우리 셋은 잘 어울렸다. 시간은 흘렀고 일 년을 넘겼다. 고양이와 일 년 넘게 살았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약속한 20년 중 고작 일 년을 함께 했지만, 그 일 년은 내가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고민하는 계기였다.
고양이와 가족을 꾸린다는 것, 그것은 결국 일방적으로 내가 도움을 받는다는 의미였다. 주변 사람들 모두 내가 고양이와 살면서 많이 변했다고 얘기했다. 긍정적 의미에서의 변화였다. 수다가 늘었고 삶에 여유가 생겼다. 고양이와 살며 지출하는 적잖은 비용으로 경제적 여유는 줄었지만, 삶엔 여유가 생겼다. 이 여유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도 스몄다. 진부한 얘기지만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은, 내가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아니라 고양이가 나를 돌보고 내가 나를 돌보는 일이다.
2011년 5월 어느 날 일주일 정도 리카가 밥을 안 먹었다. 뒤늦게 병원에 데려갔고 입원을 했다. 의사는 간이 없다고 했다. 급성이 아니라 일 년 이상 진행된 것 같다고 했다. 사흘 가량을 입원했다. 매일 병문안을 가며 리카가 깨어나길 바랐다. 리카의 얼굴을 보며 “우리 함께 살기로 했는데, 얼른 일어나야지”라고 말하며 좋은 생각만 하려 했다. 행여나 안 좋은 나의 마음이 전해질까봐 마냥 괜찮은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면서도 리카를 붙잡고 있는 것이 나의 부당한 욕심은 아닐까 갈등했다. 리카는 이렇게 누워 있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운데 나의 욕심이 리카를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그래서 미안했다. 잘 해준 것도 없는데 아픔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만 같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가 있는 날, 그 햇살 뜨겁던 날 오전 11시 20분 경, 리카는 무지개 다리를 건너 고양이별로 서둘러 떠났다. 리카의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 해 미안했고, 또 미안했다.
리카를 떠나보내는 시간을 겪으며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두 개 뿐이었다. 미안하고 고마워. 화장장에 걸려 있는 많은 메모장에도 같은 말 뿐이었다. 미안하고 또 고맙다고. 더 사랑하지 못 해서, ‘다음에’라고 미뤄서 미안했다. 한창 바쁠 때 놀자고 하면 조금은 짜증난 목소리로 “나중에”라고 말했던 것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때 다만 1분이라도 시간을 냈다면 좋았을 텐데. 그 1분이 그렇게 대단한 시간도 아닌데.
그리고 1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있다. 우리의 관계는 법적 해석에선 가족도 아니고 입양도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니다. 하지만 관계와 정서적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가족이며 서로를 입양한 사이기도 하다. 리카의 빈 자리를 바람과 내가 함께 채우고 또 애도한다. 비록 이 애도는 소수의 사람과만 공유할 수 있는 것이지만, 공유할 수 있는 사건이란 점에서 공동체의 일이기도 하다. 나는 반복해서 글을 쓰고 얘기를 하며 공개적 사건으로, 애도할 수 있는 사건으로 만들고 있단 점에서 리카는 내가 맺은 공동체 혹은 가족의 구성원일 수밖에 없다. 리카가 내 가족임을 확증하는 행동은 우리가 함께 살았던 시간을 공론화하는 일이기도 하다. 가족만이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어서가 아니라 이런 작업을 하는 관계가 가족/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리카, 안녕. 그리고 안녕.
(리카를 입양하기 직전부터 생활이 안정기에 접어든 7개월 가량의 이야기는 ricathecat.tistory.com 에 있고, 그 이후의 일상과 리카를 떠나보냈을 때의 이야기는 www.runtoruin.com 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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