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범한 프로젝트

[후기] 비오는 날의 찬란한 유언들

 

궂은 날씨와 빗소리가 주는 묘한 공기.

4월 22일 일요일, 한국여성노동자회 나비에서 비혼과 퀴어를 위한 <찬란한 유언장> 워크숍이 열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신 가운데, <더월2, If these walls could talk, 2000>의 1961년 에피소드를 함께 감상하면서 고요히 문을 열었습니다.

 

 면회시간에 오세요.
새벽에 운명하셨네요. 혹시 고인의 가족은 없으신가요?
할머니께서 다른 집을 구하실 때까지 이 집을 처분하지는 않겠습니다.

 

30여년을 함께 살아온 노년의 레즈비언커플 에비와 에디스. 둘만의 소박한 행복이 함께하던 나날 중 에비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에디스는 홀로남은 세상에서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영화 상영 이후 불이 들어오자 곳곳에 눈시울을 붉힌 참가자들이 보입니다. 여러 번 봐도 볼 때마다 목이 매이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가족제도 바깥의 관계들은 어떤 불행의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합니다. 함께 돈을 모아 구한 집도, 함께 찍은 벽걸이 액자도, 내 삶의 일상이자 터전도 의미없는 타인들과 제도에 의해 하얗게 탈색되어 버립니다.


이러한 불행의 순간에 대비하고, 꽉짜여진 제도의 틈새에서 나의 공간과 목소리를 내기 위해 비혼과 퀴어를 위한 <찬란한 유언장> 워크숍이 진행되었습니다!


장서연 변호사(공익변호사그룹공감/가족구성권연구모임)의 강의를 통해 효력있는 유언장 쓰기와 상속제도에 대한 핵심적인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한가람 변호사(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족구성권연구모임/희망을만드는법)와 함께 유언장 작성 예시를 꼼꼼히 뜯어보면서 소중한 팁들을 전수받았습니다.

 

 

 

                     

20100526_찬란한유언장_자료집.pdf


자필 증서

여러 종류의 유언 중, <자필 유언>은 전문을 자필로 작성해야하며, 1) 성명 2) 작성 날짜 3) 주소 4) 날인 (도장 또는 지장)이 있어야 효력을 가진다는 사실! 그리고 여러 유언장 중 가장 최신의 날짜로 작성된 유언장이 효력을 가진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두세요.


상속

유언이 없을 경우, 망자의 재산은 법률의 규정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상속인의 범위와 순위에 따라 상속되는 것이죠. 또한, 유언이 있다고 해도 법적 상속인들이 자기 몫의 유류분을 청구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호하고 있다는 점 역시 알아두어야겠죠?


이러한 법의 틈새에서 유언장은 비정상가족들을 위한 중요한 미래기획이 될 수 있겠지요. 유언장, 그리고 생전에 이러한 의사를 주변에 공표함으로써 사후통제권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해집니다. 이 틈새를 더욱 넓혀가기 위해 가족구성권연구모임에서는 동거계약서, 의료위임장, 사전의료지시서 등 활용할 수 있는 제도들을 유언장과 함께 엮어나갈 계획이에요.

 

 

 

배워서 남주지 않고, 직접 유언장을 작성하는 시간. 사뭇 진지한 표정, 죽음과 관계의 무게 때문에 쉬이 써내려가지 못하는 표정, 주변인들에게 슬픔이 아닌 선물을 선사하고픈 마음들. 서로의 유언장을 나누는 시간에는 재미있고 기발한 유언들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절대 영혼결혼식 따윈 하지 말아달라’

‘장례식에서 나의 소중한 성소수자 친구들이 의기소침하지 않게 신경써달라’

‘나의 모든 인터넷 계정들을 탈퇴해달라’

 

 

  

 


등등. 가족제도 바깥의 비정상가족들이 유언장에 남긴 생생한 목소리는

5월26일~6월1일 대학로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자료집을 차근차근 살펴보면서 <찬란한 유언장>을 작성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생각나는 사람들과 하고 싶은 말들, 죽음 이후 남은 이들을 위한 위로를 엮어 서랍 어딘가에 살며시 넣어두고 험난한 세상을 비범하게 나아가요~!